약물유발 간손상(Drug-Induced Liver Injury, DILI)은 특정 약물 투여 후 발생하는 간 손상을 의미하며, 간 효소 수치나 간 기능에 이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이미 허가된 약물이 철회되거나 자진 철수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는 혈중 간효소 농도의 상승이며, 다양한 약물들이 여러 기전을 통해 간손상을 유발한다. 약물유발 간손상은 임상적으로 중요한 급만성 간질환의 원인으로, 비특이적인 구조적·기능적 변화에서부터 급성간부전(acute liver failure: ALF)이나 심각한 간경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약물유발 간손상의 병리학적 특징을 이해하고 임상 현장에서 이를 평가하고 모니터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약물유발 간손상의 발생률은 비교적 낮으며, 연구가 부족하여 정확한 수치는 알려져 있지 않다. 프랑스에서 시행된 인구 조사(1997~2000년)에 따르면 약물로 인한 간독성 발생률은 인구 100,000명당 14건으로 나타났으며, 이로 인해 환자의 12%가 입원하고 6%가 사망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주요 원인 약물은 항균제, 정신작용약물, 지질저하제,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제(nonsteroidal anti-inflammatory drugs: NSAIDs) 순이었다. 아이슬란드에서 실시된 전향적 조사(20102011년)에서는 약물유발 간손상 발생률이 인구 100,000명당 19.1건으로 보고되었다. 이 결과는 acetaminophen에 의한 간손상을 제외한 수치이며, 가장 흔한 원인 약물은 amoxicillin-clavulanate, diclofenac, azathioprine, infliximab, nitrofurantoin 순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5년 전국 17개 대학병원에서 약물유발 간손상에 대한 전향적 증례 수집이 2년 동안 진행되었다. 총 371건의 간독성 사례 중 한약이 가장 흔한 원인 물질로 보고되었으며, 처방 및 비처방 약물, 건강기능식품, 민간요법이 뒤를 이었다. 아시아의 다른 국가에서도 한약제제와 건강기능식품이 약물유발 간손상의 주요 원인으로 보고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약물유발 간손상이 전체 급성간부전의 약 50%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원인 약물은 acetaminophen이며, 항균제,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제, 항뇌전증제 등도 간질환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약물유발 간손상은 발견과 진단이 복잡하고 추적 조사에 어려움이 있어 정확한 발생 빈도 측정이 어렵다. 특히 약물 유해반응 보고가 활성화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실제 발생률이 더 높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간손상을 유발하는 주요 약물은 각 나라의 허가 약물 및 약물 사용 패턴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대부분의 지용성 약물은 위장관을 통해 쉽게 흡수되는 특성을 지닌다. 약물이 소변이나 담즙으로 배설되기 위해서는 간의 대사 과정을 통해 수용성 약물로 전환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간은 cytochrome P450 효소를 이용한 생체변환 대사 과정을 통해 약물 배설을 용이하게 한다. 이러한 과정은 phase 1 산화적 대사와 phase 2 포합(conjugation) 반응 두 가지로 구성된다.
Phase 1 산화적 대사 반응에서는 활성 산소분자가 약물의 지질친화성 부위와 결합하여 활성화된 친전자기(reactive electrophiles)와 자유라디칼(free radicals)을 생성한다. 이러한 활성 물질들은 세포막과 결합하여 세포 기능의 손상 및 세포괴사를 유발한다. Phase 2 포합 대사 과정에서는 glutathione, glucuronate, sulfate 등 수용성 물질이 약물 대사체와 결합하여 대사체의 독성을 제거하고 배설이 용이한 형태로 전환된다. 만약 glutathione이 고갈되어 약물이 적절히 해독되지 못할 경우 활성 대사체가 증가하여 간손상을 일으킨다.
약물에 의한 간손상의 기전은 1) 칼슘 항상성 파괴와 세포막 손상, 2) 담소관(canalicular) 및 담즙정체성(cholestatic) 손상, 3) cytochrome P450 효소에 의한 대사적 활성화(metabolic bioactivation), 4) 자가면역 반응 촉진, 5) 세포자멸사(apoptosis) 촉진, 6) 미토콘드리아 손상 등으로 설명된다.
Lovastatin과 venlafaxine은 칼슘 항상성과 관련된 세포 단백질의 손상을 유발하는 약물이다. 이러한 약물은 세포 내 칼슘 유입을 증가시켜 ATP 생성과 액틴필라멘트 조립을 저해한다. 그 결과 세포골격이 해체되고 세포막 blebbing이 나타나면서 비가역적인 세포파괴 및 용해가 발생한다.
담즙 정체는 담소관 구조와 기능을 손상시키는 물질에 의해 발생한다. 일부 약물은 담소관의 수송체 단백질에 결합하여 담즙의 형성과 이동을 방해한다. 드물게 담관세포 파괴로 인해 담도소실증후군(vanishing bile duct syndrome)을 유발하기도 한다. 배설되지 못한 담즙산염은 계면활성제 역할을 하여 담관 상피세포와 간세포의 세포막을 손상시킬 수 있다.
대부분의 간세포 손상은 cytochrome P450 효소계에 의한 산화적 대사 과정에서 생성된 고에너지 활성 대사체와 관련이 있다. 활성화된 친전자기와 자유 라디칼은 세포 내 단백질 및 핵산과 공유 결합하여 부가 화합물을 형성하고 세포 손상과 용해를 유발한다. DNA에 형성된 부가 화합물은 신생물의 발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Acetaminophen, furosemide, diclofenac은 이러한 기전을 통해 간손상을 유발하는 약물로 알려져 있다. Cytochrome P450 효소계는 다양한 이종효소를 포함하므로 개인의 유전적 차이, 나이, 약물 기질에 따라 대사 반응이 다르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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